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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원경은 조선 제 3대왕 태종 이방원과 부인 원경왕후를 그린 이야기 입니다.

     

    태종 이방원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적의를 드러내며 싸우는지, 정종이 왜 상왕으로 불리며 물러나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태조 이성계의 가계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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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 가계도

     

     

     

     

     

    이성계의 활약상

     

     

    먼저 태조 이성계는 1356년 쌍성총관부 수복 전쟁을 시작으로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을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한 인물입니다. 단 한번도 패하지 않은 명장이라고 합니다. 

     

    이 혁혁한 전공에 힘입어 그는 고려 조정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어 1369년과 1370년에 걸쳐 이성계는 공민왕의 명을 받아 만주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동녕부를 공격 하였으며, 1376년(우왕 2년)에는 왜구에 의해 충청도 공주가 함락되고 개경이 위협을 받자 군사를 남으로 몰아 왜구 토벌에 나섰습니다.

     

    이성계는 1377년을 전후하여 고려에 창궐하고 있던 왜구를 경상도, 전라도 일대와 지리산에서 크게 물리쳤으며, 1380년에는 소년 장수 아기바투가 이끄는 왜구를 운봉에서 섬멸 하였습니다.

     

    이 전투를 흔히 황산대첩이라고 부르는데 최무선이 화약과 화통을 응용한 포를 등장 시킨 그 전투입니다. 이성계는 승전할 때마다 위치가 올라가 1388년에는 수상격인 문하시중 바로 아래인 수 문하시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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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 가계도

     

     

    조선 태조 이성계 (1335~1408)

     

     

    재위기간: 1392년 7월~ 1398년 9월, 6년 2개월

     

    1392년 4월 공양왕의 스승이자 수문하시중으로 있던 정몽주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의 사주로 살해되자, 이성계는 마침내 그해 7월에 공양왕을 내쫓고 정도전, 조준, 남은, 이방원 등의 추대를 받아 고려 국왕으로 등극합니다. 이성계는 즉위 초에는 고려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의장과 법제도 등도 고려의 것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새왕조의 기틀이 갖추어지자 정도전, 조준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호를 ‘조선’으로 확정 짓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국호를 개정한 후 무학의 의견에 따라 한양을 새 수도로 삼습니다.

     

    1393년 9월에 시작된 궁궐 건립 공사는 1396년 9월까지 계속되었으며, 궁궐이 다 완성되지 않은 1394년 10월에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깁니다.

     

    각종 법전을 편찬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하는 등 새 왕조를 다지는 데 성공하지만 왕자들 사이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노년에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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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 가계도

     

     

    이방원과 왕자의 난

     

     

    이성계는 즉위한 직후에 왕세자 책봉을 서둘러, 계비 강 씨의 소생여덟째 아들 방석세자로 결정합니다. 물론 이러한 결정에 대해 첫째 부인 한 씨 소생들의 불만이 높았습니다.

     

    특히 이성계의 등극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이방석을 보필하고 있던 정도전, 남은 등을 제거하고, 세자 방석과 일곱째 아들 이방번을 함께 살해했습니다. 현재 드라마 원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1398년에 일어난 이 사건이 ‘제1차 왕자의 난’입니다. 2년 뒤 1400년, 이방원이 동복형인 이방간의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태상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방원에 대한 증오심을 간직 한 채 소요산으로 떠났다가 다시 함주(함흥)에 머물렀습니다. 이때 이방원이 문안을 위해 차사를 보내면 그때마다 죽여버려 ‘함흥차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태조 이성계 가계도

     

     

    태조 이성계는 2명의 정비와 4명의 후궁에게서 적자 8명, 적녀 3명, 서녀 2명을 얻었습니다.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 씨에게서 장남 이방우를 비롯한 여섯 형제와 두 딸을, 신덕 왕후 강 씨에게서 이방번, 이방석 형제와 딸 하나를 얻었습니다.

     

    2명의 왕비 이외에 성비 원 씨, 정경궁주 유 씨, 화의옹주 김 씨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후궁 1명을 합해 4명의 첩이 있었으며, 이들에게서 2명의 딸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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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 가계도

     

     

    이성계의 부인들

     

     

    신의왕후 한씨

    신덕왕후 강씨

    성비 원씨

    정경궁주 유씨

    화의옹주 김씨

    (한 명 더 있습니다만 이름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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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 가계도, 원경 속 상왕 정종, 원경 편성표

     

     

     

    태조 이성계 자녀들

     

     

    진안대군(이방우)

    영안대군(이방과)-제2대 정종

    익안대군(이방의)

    회안대군(이방간)

    정안대군(이방원)-제3대 태종

    덕안대군(이방연)

    경신공주

    경선공주 —> 여기까지 신의 왕후 한 씨 자녀

     

    무안대군(이방번)

    의안대군(이방석) -> 원경에서 이방원이 죽인 어린 동생들 입니다. 

    경순공주 —> 여기까지 신덕왕후 강 씨 자녀

     

    숙신옹주—> 화의 옹주 김 씨 자녀

     

    의령옹주(모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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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 가계도, 원경 속 상왕 정종, 원경 편성표

     

     

     

    이성계의 첫째 아들 진안대군 이방우

     

     

    방우는 1354년 태조와 신의왕후 한 씨의 장자로 태어났으며, 찬성사 지윤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일찍이 관직에 나가 예의판서를 역임했습니다. 이방우는 조선이 개국되자 1392년 8월에 진안군으로 책봉되고 함경도 고원의 전답을 녹전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병으로 이듬해 4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방우가 사망함에 따라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으로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조선 제2대 왕은 둘째인 이방과가 이어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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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계의 세자 책봉

     

     

    태조 이성계는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를 총애했습니다. 강 씨는 젊고 총명했으며 친정이 권문세가였기 때문에 태조 이성계에게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문에 태조 이성계는 많은 부분을 강씨에게 의존했으며 태조 이성계의 집권 거사에 직접 참여하여 막후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강씨는 정도전 등 신진대사부 출신의 개국공신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영향력이 마침내 세자 책봉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는 첫째 부인 한 씨 소생의 장성한 왕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 씨 소생인 여덟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에 책봉했습니다.

     

    1392년 7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한 달 뒤에 소년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을 때 장남 방우의 나이는 이미 39세였고 방석의 세자 책봉에 가장 불만이 많았던 정안군 방원의 나이는 26세였습니다.

     

    방원은 맏형 방우를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태조는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조선개국의 공적을 따진다면 세자자리는 당연히 방원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조선 개국 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왕후 강 씨와 정도전 등 개혁파의 개척으로 군권을 상실하고 개국공신 책록에서도 제외당하는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자 자리마저 강비의 소생인 방석에게 돌아갔습니다.

     

     

     

     

    조선 제2대 왕 정종 이방과 1357~1419년

     

     

     

    재위기간:1398년 9월~ 1400년 11월, 2년 2개월

     

    ‘왕자의 난’으로 방석과 방번 형제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태조는 그다음 달인 1398년 9월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으로 물러났고, 방과는 동생 방원의 뜻에 따라 조선 제2대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영안군 방과는 원래 왕위의 뜻이 없었습니다. 세자 책봉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도 그는 당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업적은 모두 정안군(이방원)의 공로인데 내가 어찌 세자가 될 수 있느냐고 반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방원의 양보와 권유로 세자로 책봉되었고, 1개월 후에 태조가 물러나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방원의 양보로 즉위한 정종이 비록 왕좌에 있긴 했으나 권력이 이방원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종조 때의 정치는 거의 이방원의 뜻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정종은 재위 시에 정무보다는 격구 등의 오락에 탐닉했는데 이는 그 나름의 보신책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보신책 덕분에 정종은 이방원과의 우애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400년 11월 마침내 이방원에게 왕좌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상왕으로 물러나는 것은 정종과 그의 정비 정안왕후의 간절한 바람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목숨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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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 속 민무구 형제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에게는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첫째인 무구와 무질은 1,2차 왕자의 난과 태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세자 제(양녕)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양녕은 어린시절을 외가에서 보냈고, 그 때문에 외삼촌들인 그들과 매우 친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무구와 무질 형제는 조정의 막강한 실세로 부각되었습니다. 태종은 그런 그들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태종 이방원은 즉위 이후 원경왕후와 자주 다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태종 이방원이 지나치게 색을 탐한 것에 대한 원경왕후의 반발이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즉위와 동시에 계속해서 후궁을 들였고 어느덧 후궁의 숫자는 열 명에 육박했습니다. 원경왕후는 그런 태종을 몰아세웠고, 태종은 원경왕후가 투기를 한다며 역공을 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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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이성계의 세자 책봉 이야기를 보니 현재 드라마 원경에서 피비린내 나는 가족들 간의 싸움이 이해되시지 않나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과의 싸움이 어떻게 끝을 맺게 될지 실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밌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박영규의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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